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군산상일고등학교 야구부 (문단 편집) === '역전의 명수'의 탄생 === 1968년 훗날 프로야구 탄생에 큰 기여를 한 [[이용일]]이 사업 기반이 있던 군산 지역에 야구붐을 일으키고 싶어서 만든 팀이 군산상고였다. 단순히 고교팀만 덜렁 만든 것이 아니라, 초등학교부터 중학교, 고등학교까지 팜 시스템 형태로 제대로 구축한 팀이었다. 당시 국가대표 출신으로 선수에서 막 은퇴한 최관수[* 전북 출신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[[인천광역시]] 출신이며 [[동산고등학교(인천)|동산고]]를 졸업했다. 특히 에이스로 활약하던 1959년 [[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]]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.] 감독을 영입하면서 1971년에는 신생팀으로 무려 대통령배 4강에 오르면서 돌풍을 일으켰다. [[파일:external/ojsfile.ohmynews.com/IE001671391_STD.jpg]] 가운데가 최관수 감독. 맨 오른쪽은 [[김봉연]]이고 김봉연 옆은 [[김준환]]이다. 하지만 그 무렵 선수들이 대형사고를 치는데, 당시 고교생이었던 [[김준환]], [[김봉연]] 등이 추석날 군산시내에서 막걸리를 먹던 중 시비가 붙어 싸움을 벌이다가 적발된 것이었다. 자칫 선수들의 퇴단과 야구부의 존폐가 위험해 질 수 있던 상황에서 최관수 감독은 아이들을 잘못 가르친 자신의 책임이라면서 선수들의 퇴단을 말리면서 선수들을 불러놓고 '''"너희들을 잘못 가르친 내 잘못이 크니, 나를 때리라."'''는 말을 한다.[* 비슷한 사례가 [[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|대구의 한 학교]]에서도 있었다. 선수들이 훈련에 무단불참하자 감독이 선수들에게 벌을 주는 대신 "너희들을 잘 통솔하지 못한 내 책임"이라고 말하며 선수단 전원에게 자신의 엉덩이를 1대씩 때리라고 지시했고 선수단 중 1명이 나서서 진짜 감독을 때렸다고 한다. 이 당시 감독은 훗날 [[삼성 라이온즈]]와 [[태평양 돌핀스]] 감독을 맡았던 [[정동진(1946)|정동진]]이었고 감독을 때린 학생 선수는 [[SK 와이번스]] 감독을 맡았던 [[이만수]]다.] 그리고 실제로 못 때리겠다는 사람들에게는 손수 이렇게 때리라는 시범을 보였다고(...) 한다. 이에 선수들은 무릎 꿇은 채 눈물을 펑펑 흘리며 최 감독의 엉덩이에 방망이질을 했고[* 모든 선수들이 다 때린 것은 아니라고 한다. 선수들이 엉엉 우는 소리를 들었던 야구부장 송경섭 교사가 달려와서 선수들을 말렸다고 한다.] 그렇게 탈선으로 인한 문제는 수습되었다. [youtube(d6ZSSOOpxiA)] 명장 밑에 약졸 없다고, 이 일 이후 군산상고는 확실히 더욱 강력해졌다. 그리고 고교야구가 지속되는 한 계속 회자되는 명승부가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일어났다. [[부산고등학교 야구부|부산고]]와 결승에서 만난 군산상고는 9회말 시작 전까지 1:4로 뒤지면서 끌려갔다. 그러나 9회말 공격에서 연속 안타와 상대(3루수 김문희)의 주루 방해를 묶어 극적으로 4점을 내면서 기적적인 대역전승을 이뤄내며 창단 첫 우승에 성공했다. 이 역전승 이후로 군산상고의 별명은 역전의 명수가 되었다. 기적과도 같았던 이 역전 드라마는 훗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. 1977년에 개봉한 '고교결전 자! 지금부터야'라는 영화가 군산상고의 대역전 스토리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. [youtube(vdwN-JR35c4)] ||[[파일:external/ojsfile.ohmynews.com/IE001654334_STD.jpg]]|| ||1978년 군산상고 야구부. 가운데줄 제일 왼쪽에 있는 선수가 [[김성한]]. || 그 뒤 최관수 감독의 지도 아래 1976년에는 대통령배 우승을 차지하는 등, 강호로 부상했지만 1979년 최관수 감독이 파킨스씨 병으로 은퇴[* 최관수는 [[기업은행]] 군산지점에서 은행원과 군산상고 야구부 감독 겸업을 하고 있었다([[이용일]]이 기업은행 사장에게 "군산지점 실적 향상에 도움을 주겠다"라며 부탁해 데려온 케이스). 1978년에 전남북 지역 기업은행 지점 대항 축구대회가 열렸는데 이때 최관수도 참가했다가 철봉에 세게 부딪혔다. 그 후 1년후에 파킨슨병 선고를 받아서 [[이용일]]이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.] 하면서 군산상고의 태동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. 이후 지휘봉은 백기성 감독이 잡게 된다.[* [[전설의 타이거즈]]에서 이건열이 술회하기를 스카우트는 최관수 감독에게 받았으나 몸이 아파서 백기성 감독이 새로 와서 지도를 했다고 한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